신규 간호사 시절을 떠올리면 누구에게는 이미 희미해진 기억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하루하루가 버티기처럼 느껴지곤 한다. 건양대학교병원 면접에서 장기근속 포상금을 받겠다며 패기 있게 이야기했던 나는, 막상 입사하자마자 그 말의 무게를 실감했다. 실습을 나와본 적 없는 병원이라 전자의무기록 시스템부터 낯설었고, 처방전달전산시스템은 왜 따로 있는지도 몰랐다. 프리셉터 선생님이 빠른 속도로 화면을 넘기며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우스 커서조차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고, 사용 물품 청구도 헷갈려 내 처방전달전산시스템 화면은 늘 텅 비어 있었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받아 적으며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배운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몸은 녹초가 되어 그대로 잠들어 버리기 일쑤였다.
독립이 가까워질수록 압박감은 더 커졌다. 교육전담 간호사 선배가 마지막 근무에서 이제 혼자 해보라며 맡겨준 날,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대부분의 일을 완수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꽉 채웠다. 동기마저 업무의 부담 때문에 그만두겠다는 말을 했을 때는 부러움과 불안이 동시에 밀려왔다. 독립이라는 무게에서 벗어나는 선택이 부럽기도 했지만, 여기서 버티지 못하면 어디서도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나름대로 마음을 다잡았다.
첫 독립 근무 날이 다가왔다.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뛰어다녔지만 인계 시간이 되면 끝낸 일은 거의 없었다. 오더 숫자는 지워지지 않았고 인계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계를 시작하면 선배들의 깊은 한숨이 이어졌다. 스스로가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계속됐다. 결국 어느 날엔 선배의 지적에 지쳐 더는 못하겠다는 말까지 내뱉었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나고, 열심히 했다는 것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억울함이 뒤섞여 감정이 폭발했던 순간이었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그만두겠다고 파트장님께 말했고, 이어서 팀장님과 부장님과의 상담을 거치며 다시 한번 해보자는 용기를 얻게 됐다.
그날 이후에도 실수와 부족함은 계속됐지만, 나를 잡아준 건 결국 선배들이었다. 혈관이 자꾸 터져 채혈을 부탁드릴 때면 누구나 처음엔 어렵다며 대신 라인을 잡아주었고, 오더를 놓치지 말라며 업무를 챙겨주었다. 바쁜 와중에도 천천히 설명해주고, 같은 질문을 반복해도 짜증내지 않고 도와준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조금씩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돌아보면 나에게 큰 압박을 주던 것도 선배들이었지만, 그 압박 속에서 버틸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선배들이었다.
신규 간호사에게 선배의 능력 일부라도 닮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선배들은 대단한 존재였다. 적응은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라, 선배가 신규를 이해하고 이끌어주며 신규가 선배를 존중하고 배우는 상호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완벽하게 적응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완벽에 가까워지기 위해 오늘도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선배들을 귀찮게 할 일이 많겠지만, 조금이라도 덜 귀찮게 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진짜 나만의 완벽 적응기를 완성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본다. 정태웅 건양대병원 76병동 간호사
출처 : 대전일보(https://www.daejonilbo.com)